3교시 의궤로 보는 조선 왕실 행사 왕실의 활쏘기 시합인 대사례입니다. 국왕이 주관하는 활쏘기 의례인 대사례는 왕과 신하가 활쏘기 시합을 하면서 군신 간의 화합을 도모한 의식이라고 해요.
조선 전기 성종, 연산군, 중종 때 시행한 대사례는 한동안 스톱이 된 거예요. 대사례의 필요성을 느낀 영조는 200년 만에 대사례를 부활시키죠. 1743년 대사례 의궤 제작을 지시합니다. 재미있는 게 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왕긔 과녁은 곰의 머리가 그려진 웅후, 신하의 과녁은 사삼의 머리가 그려진 미후예요.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신하들의 다양한 깃발 색깔의 의미는 뭘까요? 여기에 숨어있는 한 가지 비밀은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고 해요.
좌측을 맞히면 청색 깃발, 우측을 맞히면 백색 깃발, 네발을 쏜 뒤 적중한 횟수를 기록해놓고 있다고 해요. 거기에 왼손인지 오른손인지까지 기록되어 있더라고요. 이 자료 중 놀라운 게 30명 중 12명인 40%가 왼손잡이라고 해요. 조선시대에는 왼손잡이도 그대로 인정해준 거 같다고 해요.
잘한 사람에게는 상품이 주어지고 못 맞힌 사람에게는 벌주가 들어갔다고 해요. 군신 간의 화합 도모하기 위한 행사로 무서운 형벌을 내리지 않고 벌주를 내렸던 거죠. 활쏘기 대회 현장의 모든 것을 기록한 대사례 의궤, 이를 비롯한 의궤 속 그림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의궤 속 반차도 또는 의궤 속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 그림은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 반차 도고 영조의 자리가 비어있죠. 대사례 의궤에도 영조 자리가 비어있어요. 정조의 행차를 다룬 원행 을묘 정리 의궤에서도 정조가 탔던 말만 등장하죠. 어떤 행사에서도 왕은 그리지 않았던 것이 관례라고 해요. 그만큼 왕을 존엄하게 생각한 거고 한편으로는 왕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면 왕의 신비감이나 권위가 반감될 수도 있는데 왕을 그리기는 그려요, 왕의 어진을 하지만 어진은 따로 제작해서 보관하죠. 또 중요한 것이 어진을 제작하는 과정을 의궤로 기록합니다.
어진을 제작한 그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것만 감질나게 그려두고 정작 왕의 어진은 그리지 않았다고 해요.
<출처: jtbc 차이 나는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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